상표권은 등록상표와 동일 또는 유사한 상표를 지정상품과 동일 또는 유사한 상품에 사용하는 타인의 행위를 배제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그런데, 외형적으로는 정당한 권리행사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상표권에 대한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에, 상표권 침해금지 청구소송 등에서 피고는 원고의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항변을 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12. 10. 18. 선고 2010다103000 전원합의체 판결은 “상표법은 등록상표가 일정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 별도로 마련한 상표등록의 무효심판절차를 거쳐 그 등록을 무효로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상표는 일단 등록된 이상 비록 등록무효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심판에 의하여 무효로 한다는 심결이 확정되지 않는 한 대세적으로 무효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상표등록에 관한 상표법의 제반 규정을 만족하지 못하여 등록을 받을 수 없는 상표에 대해 잘못하여 상표등록이 이루어져 있거나 상표등록이 된 후에 상표법이 규정하고 있는 등록무효사유가 발생하였으나 그 상표등록만은 형식적으로 유지되고 있을 뿐임에도 그에 관한 상표권을 별다른 제한 없이 독점배타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 상표의 사용과 관련된 공공의 이익을 부당하게 훼손할 뿐만 아니라 상표를 보호함으로써 상표사용자의 업무상 신용유지를 도모하여 산업발전에 이바지함과 아울러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상표법의 목적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또한 상표권도 사적 재산권의 하나인 이상 그 실질적 가치에 부응하여 정의와 공평의 이념에 맞게 행사되어야 할 것인데, 상표등록이 무효로 될 것임이 명백하여 법적으로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없음에도 형식적으로 상표등록이 되어 있음을 기화로 그 상표를 사용하는 자를 상대로 침해금지 또는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도록 용인하는 것은 상표권자에게 부당한 이익을 주고 그 상표를 사용하는 자에게는 불합리한 고통이나 손해를 줄 뿐이므로 실질적 정의와 당사자들 사이의 형평에도 어긋난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보면, 등록상표에 대한 등록무효심결이 확정되기 전이라고 하더라도 그 상표등록이 무효심판에 의하여 무효로 될 것임이 명백한 경우에는 그 상표권에 기초한 침해금지 또는 손해배상 등의 청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하고, 상표권침해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으로서도 상표권자의 그러한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항변이 있는 경우 그 당부를 살피기 위한 전제로서 상표등록의 무효 여부에 대하여 심리, 판단할 수 있다고 할 것이며, 이러한 법리는 서비스표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라고 설시하였습니다.
위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피고는 상표권 침해금지 또는 손해배상청구에 관한 소송에서 상표등록이 무효로 될 것임이 명백하다는 항변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상표등록 무효심판을 반드시 청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즉 위 대법원 판결은 상표권 침해금지 또는 손해배상청구에 관한 소송에서 피고에게 상표등록 무효 여부 다툼에 관한 유력한 방어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07. 2. 22. 선고 2005다39099 판결은 “상표권자가 당해 상표를 출원, 등록하게 된 목적과 경위, 상표권을 행사하기에 이른 구체적, 개별적 사정 등에 비추어, 상대방에 대한 상표권의 행사가 상표사용자의 업무상의 신용유지와 수요자의 이익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상표제도의 목적이나 기능을 일탈하여 공정한 경쟁질서와 상거래 질서를 어지럽히고 수요자 사이에 혼동을 초래하거나 상대방에 대한 관계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 등 법적으로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상표권의 행사는 설령 권리행사의 외형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등록상표에 관한 권리를 남용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고, 상표권의 행사를 제한하는 위와 같은 근거에 비추어 볼 때 상표권 행사의 목적이 오직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고 손해를 입히려는 데 있을 뿐 이를 행사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이익이 없어야 한다는 주관적 요건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시하였습니다.
구체적 사안에 대하여, 원고는 ACM사의 국내 총판대리점 관계에 있던 회사로서 ACM사가 국내에 상표등록을 하고 있지 않음을 기화로 이 사건 등록상표들을 출원, 등록해 놓았다가, ACM사와의 총판대리점관계가 종료된 후, 이 사건 등록상표들을 실제 상품에 사용하지도 아니하면서 ACM사의 국내 출자 법인인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등록상표권을 행사하여 그동안 피고가 정당하게 사용해 오던 ‘ACM’이나 이를 포함한 표장을 피고의 인터넷 도메인 이름 또는 전자우편주소로 사용하거나 피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해달라고 청구하는 것은 이 사건 등록상표권을 남용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 사안에서, ACM 또는 ACM을 포함하는 상표에 관한 권리는 일본에 소재하는 ACM사의 것입니다. 이에 원고가 이 사건 등록상표를 등록한 것에는 무효사유도 존재합니다.
현행 상표법은 “국내 또는 외국의 수요자들에게 특정인의 상품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인식되어 있는 상표(지리적 표시는 제외한다)와 동일 유사한 상표로서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 하거나 그 특정인에게 손해를 입히려고 하는 등 부정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상표”(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3호), “동업 고용 등 계약관계나 업무상 거래관계 또는 그 밖의 관계를 통하여 타인이 사용하거나 사용을 준비 중인 상표임을 알면서 그 상표와 동일 유사한 상품에 등록출원한 상표”(제20호), “조약당사국에 등록된 상표와 동일 유사한 상표로서 그 등록된 상표에 관한 권리를 가진 자와의 동업 고용 등 계약관계나 업무상 거래관계 또는 그 밖의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자가 그 상표에 관한 권리를 가진 자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그 상표의 지정상품과 동일 유사한 상품을 지정상품으로 하여 등록출원한 상표”(제21호)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고, 착오로 등록되었다고 하더라도 무효사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 사안에서 피고는 해당 사건 등록상표가 무효로 될 것이 명백하다는 점을 주장할 수도 있고, 원고의 등록상표가 위 대법원 판결이 설시한 기준에 해당한다는 것을 주장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후자의 주장에 대한 입증이 용이할 것입니다.
소위 상표 브로커 행위에 의한 상표등록 시도는 위와 같이 거절이유에 해당하여 성공하기 어렵고, 설령 상표등록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상표 브로커 행위는 위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상표권 행사가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되어 성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위 대법원 판결과 동일한 취지로 판결한 대법원 판결로는 대법원 2007. 1. 25. 선고 2005다67223 판결, 대법원 2014. 8. 20. 선고 2012다6059 판결, 대법원 2008. 7. 24. 선고 2006다40461 판결 등이 있습니다.
한편, 2012다6059 판결은 위 기준의 설시에 더하여, “어떤 상표가 정당하게 출원 등록된 이후에 그 등록상표와 동일 유사한 상표를 그 지정상품과 동일 유사한 상품에 정당한 이유 없이 사용한 결과 그 사용상표가 국내의 일반 수요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용상표와 관련하여 얻은 신용과 고객흡인력은 그 등록상표의 상표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의한 것으로서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없고 그러한 상표의 사용을 용인한다면 우리 상표법이 취하고 있는 등록주의 원칙의 근간을 훼손하게 되므로, 위와 같은 상표 사용으로 인하여 시장에서 형성된 일반 수요자들의 인식만을 근거로 하여 그 상표 사용자를 상대로 한 등록상표의 상표권에 기초한 침해금지 또는 손해배상 등의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설시하였습니다.
위 판결은 선등록상표의 상표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의하여 어떤 사용상표가 국내의 일반 수요자에게 알려지게 되었다면, 그러한 사용상표는 일반 수요자들의 인식에 근거하더라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